본문으로 바로가기
명예혁명 과정

명예혁명

영국의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은 1688년에 일어납니다. 당시 영국의 왕 제임스 2세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와 갈등, 왕권신수설에 대항하는 의외와의 갈등에 봉착하게 됩니다. 영국은 16세기 헨리 8세에 의해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국교를 성공회로 선포했는데 제임스 2세는 로마 가톨릭 신자들을 관리로 채용하였고 아들이 태어나자 영국에 가톨릭 왕국이 세워질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을 느끼게 되었죠. 영국의 토리당과 휘그당은 동맹을 맺어 국왕에 맞섭니다.

제임스2세

제임스 2세

 

윌리엄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

네덜란드의 오렌지공 윌리엄(William)과 결탁을 맺고 군대는 영국에 상륙하여 제임스 2세를 프랑스로 쫓아냅니다. 윌리엄의 부인은 제임스 2세의 딸인 메리 2세로 영국 공동 왕위에 즉위하여 1689년 권리장전에 서명하고 왕권은 별다른 유혈충돌 없이 이양됩니다.

 

왜 명예혁명인가?

역사적으로 혁명이라함은 많은 희생을 치러왔습니다. 제임스 2세 아버지인 찰스 1세는 청교도 혁명으로 인해 대역죄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습니다. 그 후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공화정이 세워졌으나 1660년 왕정 복고로 찰스 1세의 아들인 찰스 2세가 왕이 됩니다. 그 후 형 찰스 2세가 죽고 제임스 2세가 즉위합니다.

 

제임스 2세는 왕권신수설을 내세우며 자신의 신앙을 강요하고 폭정에 항거하는 사람들을 학살했습니다. 귀족, 평민 할 것없이 국민 전체가 왕을 거부하게 되고 의회는 제임스 2세의 딸 메리와 결혼한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죠.

네덜란드 의회의 허락 후, 월리엄은 1만 5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1688년 11월 5일 영국에 상륙합니다. 외국의 침략으로 보이지 않게 면밀하게 계획을 짰습니다. 폭군으로부터 개신교도들을 구원한다라는 것이 명분이었죠. 상륙 후 제임스 2세의 가신들이 상당수 투항하고 12월 11일 제임스 2세는 도망쳤으나 어부에게 잡히고 맙니다. 그리고 프랑스로 망명하게 되죠.

 

간간히 교전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왕위가 큰 충돌없이 이양되었기에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명예롭게 이루어졌다고 해서 명예혁명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명예혁명의 역사적 의의

영국은 이전부터 왕권과 의회간의 대립이 있어왔습니다. 1215년 존 왕이 마그나 카르타(대헌장, Magna Carta)에 서명하여 왕에게 몇가지 권리를 포기하고 법적 절차를 존중하며 왕의 의지가 법에 의해 제한될 수 있음을 문서화했습니다.

 

찰스1세

하지만 헨리 8세,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영국을 세계 최대 제국으로 발전시키고 왕권이 강화되었으나 찰스 1세는 폭군 정치로 결국 사형을 당합니다. 그리고 제임스 2세가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자 다시 한번 귀족들에게 발목을 잡히게 되죠. 명예혁명 1년 후 월리엄 3세를 추대하면서 의회는 권리장전(Bill of Rights) 승인받아 왕의 권력을 제한합니다. 권리장전의 주 내용은 의회의 동의없이 법률의 제정이나 금전의 징수 및 상비군의 유지는 금지하며 선거 및 언론의 자유, 잔인한 형벌의 금지, 의회를 자주 소집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권리장전

권리장전은 영국 의회정치 확립의 기초가 되며 절대주의를 종식시켰다는 큰 의의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왕의 의지에 따라 타국과 전쟁을 하거나 세금을 올리거나 했는데 이제는 의회의 동의없이는 불가능해졌다는 것이지요. 후에 미국의 독립이나 프랑스 혁명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관련글

2019/03/03 - [역사/영화로 보는 세계사] - '더 페이버릿' 실제 이야기는?